11. 이영균 흉부외과 교수, 국내 최초 개심술(1959)
195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흉부외과의 이영균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연수를 떠났다. 한국전쟁 직후 국내 상황은 전반적으로 척박했고, 서울의대부속병원조차 심장외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심장외과를 전공하기 위해 장기 연수를 떠난 것이다. 당시 미네소타대학은 릴리하이 교수의 심장수술 팀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영균 교수는 릴리하이 교수의 심장수술 팀에서 2년간 연수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여전히 암울했다. 개심술(開心術)을 시행하려면 다른 수술과는 달리 특수장비와 재료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국내에서 생산할 기술도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1959년 이영균 교수는 국내 최초로 개심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 번째 개심술은 실패했다. 이영균 교수는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경험과 역량을 쌓았다. 마침내 1963년 국내 최초로 심장중격결손 환자에 대해 개심술을 통한 교정 수술에 성공했다. 그 후 지속적으로 개심술의 성공률을 높이면서 국내 개심술의 개척자로서 위상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