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강혜련 서울대병원 교수 “항암제 알레르기, ‘탈감작’으로 정면돌파”
# 약물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계가 특정 약을 '나쁜 침입자'로 오해해서 공격하는 현상이다. 보통은 그 약을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암 치료처럼 생명이 달린 상황에서는 약을 포기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 해서 강혜련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면역계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적은 양부터 약을 천천히 늘려가며 몸을 적응시키는 '탈감작 치료'를 통해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 돕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약에, 언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이 안전한 치료의 첫걸음이다.
강혜련 서울대학교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꼭 필요한 약을 알레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위험한 약을 가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이 약에 적응하도록 아주 적은 양부터 서서히 투여해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탈감작 치료'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항암제 과민반응을 겪는 환자들도 안전하게 원래의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환자들은 약을 먹고 속이 쓰리거나 졸린 일반적인 부작용도 알레르기로 오해할 수 있다. 반대로 피부 발진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알레르기일 수 있다. 따라서 약이 몸에 들어간 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반응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분석해 면역계의 오작동을 짚어내는 것이 진단의 핵심이다.
14일 여성경제신문 기획 '명의'는 약물 알레르기의 기본 원리는 물론, 피부가 심하게 벗겨지는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 같은 중증 과민반응이 얼마나 위험한지 강혜련 교수를 만나 물었다. 나아가 강 교수는 병원과 국가 사회 전체가 안심하고 약을 사용할 수 있는 '정교한 약물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필수 치료제 과민반응, 탈감작요법으로 극복
―임상 현장에서 경험한 약물 알레르기 환자 중 치료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례가 있다면
"항암제나 항생제처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약제에서 과민반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악성종양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환자가 갑자기 두드러기·호흡곤란·혈압 저하를 보이면 의료진과 환자 모두 본능적으로 '이 약은 더 이상 쓸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이 그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약을 중단시키고 다음 순위의 약제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효과적인 대안이 없거나 대안이 있더라도 원래 쓰던 약만 못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암 치료 자체가 흔들리게 되고 환자의 수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환자들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면서 약물 알레르기 진료는 위험한 약을 피하게 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꼭 필요한 약인 경우에는 안전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약물 알레르기 진료의 진짜 역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약물 알레르기 진료는 기본적으로 위험한 약을 찾아내어 대피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대장암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항암제 중 하나인 옥살리플라틴은 반복 투여 과정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쇼크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탈감작요법을 적용하면 98% 이상에서 해당 약제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약물 알레르기는 환자마다 양상이 매우 다양한데 이를 해석하고 진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많은 환자분이 약을 먹은 뒤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대부분 알레르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의 일반적인 부작용·질환 자체의 증상·감염·다른 약제의 영향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론 겉으로는 가벼운 증상처럼 보여도 심각한 면역반응의 시작인 경우도 있다.
약물 알레르기 진단의 핵심은 시간 관계와 임상 양상이다. 약을 언제 투여했고 얼마 후 증상이 나타났는지, 어떤 증상이었는지, 그것이 실제 면역학적 과민반응에 부합하는지를 종합적으로 본다.
증상 발생 시점이 1시간 이내인지, 수시간 또는 수일이 지나서 나타나는지에 따라 관여하는 면역반응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은 후 이전에 없던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약제명·경험한 증상·언제 생겼는지를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한다.
△알레르기 반응의 유형은 무엇인가 △이 약이 정말 원인인가 △재노출 시 재발 위험도는 얼마나 되는가 △다른 대체 약제는 있는가를 정리한 뒤 검사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피부시험·혈액검사·약물유발시험은 이 임상 판단을 보완해 주는 도구입니다. 결국 약물 알레르기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과 반응 양상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면역계 오해 푸는 탈감작, 환자별 맞춤형 접근
―일반적으로 환자와 의료진 모두 약을 중단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치료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약물 알레르기에서 '중단'은 가장 빠르고 직관적인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특히 항암제·항생제·조영제·생물학제제처럼 치료상 꼭 필요한 약제는 중단 자체가 환자에게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약물 알레르기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환자가 평생 특정 약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면 실제 알레르기가 아니었거나 적절한 평가와 조치를 통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불필요한 약물 회피는 치료 선택지를 줄이고 더 비싸거나 덜 효과적이거나 더 위험한 대체 약을 사용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약물 알레르기 진료의 목표가 환자에게 안전한 치료 선택지를 다시 열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탈감작 치료와 약물 재투여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다.
―탈감작 치료는 개념적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치료 설계 시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변수는 무엇인가
"탈감작은 말 그대로 면역반응이 생길 수 있는 감작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탈감작요법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 약이 정말 필요한가이다. 대체 약제가 충분히 있고 효과와 안전성이 비슷하다면 굳이 재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해당 약이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이거나 대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탈감작을 고려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이전 반응의 양상과 중증도다. 투여 직후 바로 생겼으나 두드러기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반응이었는지, 심한 숨참과 혈압 저하를 동반한 아나필락시스였는지, 일주일 뒤 발생한 피부 발진이었는지, 다른 내부 장기에도 이상이 생겼는지를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약물 알레르기로 진단되면 증상을 일으킨 약이 갖는 치료적 가치와 약으로 인한 과민반응 재발로 입게 되는 손해를 비교해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로운 방향으로 결정하게 된다.
대부분의 면역반응은 면역계에 기억이 남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던 약을 다시 투여하면 증상이 재발한다. 그래서 탈감작요법을 통해 면역계를 깨우지 않고 살금살금 체내에 투여해 과민반응을 피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저는 종종 이것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 비유한다. 면역계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약을 투여하는 것이다.
다만 탈감작을 하더라도 10~20%에서는 진행 중 크고 작은 과민반응 재발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탈감작요법은 반드시 알레르기 전문의 감독 아래 의사·간호사·환자가 긴밀히 협조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정확한 병력 기록 필수, 국가 약물안전망 구축 시급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약물과민반응증후군(DRESS)·아나필락시스 같은 중증 약물 과민반응은 일반 알레르기와 어떤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는가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나 약물과민반응증후군의 경우 체내 림프구 계통의 반응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초기에는 일반 피부 발진과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진행하면서 피부가 벗겨지거나 내부 장기에 심한 염증이 생겨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반면 아나필락시스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발생하는 급성 알레르기 전신반응이다. 피부 두드러기나 발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호흡곤란·혈압 저하·의식 소실 등이 동반될 수 있어 즉각 조치하지 않으면 사망 위험이 있다.
이들 질환은 강력한 면역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원인 약제를 다시 투여하면 재발 위험이 매우 크다. 재투여 여부는 약제의 필요성뿐 아니라 과민반응의 양상에 따라 달라진다.
약제 투여 1시간 이내에 나타나는 즉시형 반응은 비교적 탈감작요법이 좋은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재투여가 가능하지만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나 약물과민반응증후군 같은 중증 지연형 반응은 탈감작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투여하는 것이 금기로 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약물 이상반응 보고 및 관리 체계에서 가장 큰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나라의 약물 이상반응 보고 체계는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첫째는 보고의 불균형이다. 중대한 반응은 비교적 잘 보고되지만 경미하거나 애매한 반응은 누락되기 쉽다.
둘째는 정보의 질이다. 약물 부작용이라고만 기록돼 있으면 실제 어떤 약을 언제 사용했고 어떤 증상이 발생했으며 중증도가 어땠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약물 안전 정보는 임상적으로 해석 가능한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셋째는 정보의 연속성이다. 한 병원에서 확인된 중요한 약물 알레르기 정보가 다른 의료기관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가 여러 병원을 이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안전 정보가 환자 중심으로 더 잘 연결되는 체계가 필요하다."
―향후 약물 알레르기 진료는 정밀의학·유전체 분석·인공지능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앞으로 약물 알레르기 진료는 더욱 정밀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부 약물에서는 특정 유전형이 중증 약물 과민반응 위험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앞으로는 유전체 정보·면역학적 바이오마커·임상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환자별 위험도를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자의무기록에 축적된 처방 정보·검사 결과·과거 이상반응 기록을 분석하면 특정 환자가 어떤 약물에 위험할지 사전에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의료진이 처방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확인하고 대체 약제나 탈감작 가능성을 판단하는 임상 의사결정 지원 도구로도 발전할 수 있다.
다만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적 해석이다. 유전체 검사나 인공지능은 더 정확하고 안전한 판단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약물 알레르기 진료의 미래는 데이터와 임상 경험이 함께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무엇을 가장 강조하고 싶은가
"첫째, 약을 복용하거나 투여받은 뒤 어떤 증상이 언제 발생했는지 기억하고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약을 먹고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약 이름·복용 시점·증상·응급실 방문 여부·치료 내용 등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남겨야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상이 생겼다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좋다.
둘째, 약물 알레르기가 의심된다고 해서 모든 약을 무조건 피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알레르기 정보는 오히려 향후 치료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 실제 알레르기인지, 어떤 약을 피해야 하는지, 대체 약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중증 반응을 경험한 환자는 그 정보를 의료진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특히 아나필락시스·스티븐스-존슨 증후군·약물과민반응증후군 같은 중증 약물 과민반응을 경험했다면 원인 약제와 관련 약제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약물 알레르기 진료의 목표가 단순히 약을 금지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가능한 한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약을 피해야 할 때는 확실히 피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약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확한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약물 알레르기는 환자에게 큰 두려움을 주는 문제다. 하지만 정확히 평가하면 불필요한 약물 회피를 줄일 수 있고 꼭 필요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환자 한 사람의 안전한 치료를 넘어 병원과 우리 사회 전체의 약물 안전 체계가 더욱 정교해지는 데 기여하고 싶다."
☞탈감작요법= 약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약물을 극소량부터 단계적으로 증량 투여해 체내 면역계가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적응시키는 치료법이다.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약제가 필요한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쓰인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 약물 등에 의해 발생하는 중증 피부 점막 질환으로, 심한 수포와 피부 박리가 나타나며 내부 장기 손상을 동반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알레르기 과민반응이다.
출처 및 원문 보기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2537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