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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헌기 교수의 사진한장

내가 뵈온 민헌기 선생님

조회수 : 835 등록일 : 2020-08-21

내가 민선생님을 처음 뵈온 곳은 1966년 가을, 서울의대 산악반 lantern party장이었다.

그때 나는 의예과 1학년이었고 선생님은 미국에서 돌아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었다.
숲이 울창한 경기도 광능의 계곡에서 깊어 가는 가을밤에 모닥불은 튀며 타고, 그 불 곁에 둘러앉은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얼굴이 모두 붉게 물들었을 때 선생님은 “라메르”를 열창하였다. 나는 임상 교수님들은 여유 있게 놀기도 잘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뒤 임상에 올라와 선생님을 강의실에서 다시 뵈었을 때, 한치도 빈틈없는 강의는 토씨 하나까지도 아껴 쓰셨다. 더구나 bed side teaching에서 선생님은 전공 분야를 떠나 내과 전반, 특히 기초 지식에 대하여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다.

 학교를 마치고 resident가 되었을 때 선생님 환자에게 하루 valium 8 mg을 처방 내었을 때 그것은 양이 많으니까 2 mg만 줄여서 투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valium 8 mg과 6 mg의 차이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나는 그후부터 학생들이나 전공의들에게, 또 환자를 볼 때 그 미미한 차이를 인식하여 가르치고 처방하는 습관이 생겼다.

 Resident과정이 끝난 뒤 박사과정을 선생님 지도하에 하게 되었다. 연구 제목을 정할 때부터 실험이 끝나고 논문 발표와 심사가 통과 할 때까지 엄격한 가르치심과 자상한 배려로, 일면 혼이 나고, 일면 깨끗한 연구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

 1983년 가을 일본 나고야에서 한일 당뇨병 학회가 열렸을 때, 선생님은 co-chairman으로 활약이 크셨고, 그때 교실원들과 같이 나도 학회에 참석하였다. 선생님은 그 바쁘신 일정에도 나고야대학 내과학교실을 방문할 수 있게끔 배려해 주셨다. 우리들이 그곳에서 본 것은 넓고, 깨끗한 연구실이 아니라, 지금은 소아병원 자리의 없어진 내과학연구실의 침침한 분위기이었고, 좁은 연구실에서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려고 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의국을 떠나 선생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하지만 그 동안 선생님께서 변한 것이 있다면 표정의 날카로움에서 부드러움으로, 오로지 약간의 흰머리를 빼고는 선생님을 처음 뵈온지 20여년이 지났건만 그 모습 그대로이시다.

 선생님의 원만하고 절제 있는 생활과 사모님의 헌신적인 내조로 항상 건강을 유지하시는 선생님은 이제까지 해오신것과 같이 앞으로도 우리 나라 내분비학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 정진 있으시기를 빕니다.


1989년 1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유    석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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