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주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

  일주문을 지나 바로 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참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주문을 지나서 법당에 이르기까지는 적당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절로 가는 길이 만들어 졌다. 숲으로 싸인 평지 길이거나 약간의 경사진 굽은 길이거나 오르는 길이다. 우리나라 사찰 건축의 특징은 인공적인 장식을 피하고 자연 그 자체를 하나의 건축적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러 점은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는 절 입구 길에서 잘 관찰된다. 간혹 들어가는 길에 나무를 심어 약간 꾸밈을 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연 그대로 활용한다.

  절로 들어가는 길 중 전북 부안의 내소사 입구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로 유명하다(사진 1).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약 700여 미터의 길 양 옆으로 20-30  미터 높이의 전나무가 꽉 차있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음에 맞는 친구나 연인끼리 이 길을 걷는 것은 환상적이다. 혼자 걸어도 좋다. 굳이 대화가 없어도 좋다. 그저 숲길을 걸으며 산새들의 노래를 들으면 족하다. 땅에서 전해오는 地氣를 밟으며 전나무에서 풍겨오는 나무와 풀 냄새로 삼림욕을 하면 이것이 바로 신선의 경지가 아닌가. 충북 보은의 법주사 입구 길도 좋다(사진 2). 아스팔트가 깔려서 옛날의 운치를 잃었지만 그래도 수백 년 된 고목들로 울창한 숲을 이루어 좋고, 길가에 쌓인 중생들의 소원이 담긴 돌탑들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은 휘어져 있는 점이 특색이다.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자기를 낮추고, 참회하여 숙생의 업을 조금이라도 닦아 낸 뒤에 만나 뵙는 것이 예의에 맞는다. 그래서 들어가는 길도 굽고 돌아서 가도록 설계되어 있다(사진2-5). 길을 직선으로 곧게 만들면 거리가 단축되고 경제적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훼손해야 한다. 내가 편하고자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불법에 어긋난다. 대자대비의 부처님 눈으로 보면 길가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다 중생이요, 불성이 있으니 깨치면 바로 부처다. 나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만드는데 어찌 나무며, 풀이며, 돌 하나라도 가볍게 다를 수 있겠는가. 있는 그대로, 원래 생긴 모습 그대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길에 나무가 있으면 이를 피해서 간다. 계단을 쌓데 돌을 다듬지 않는다. 생긴 모습대로 높이나 너비가 다 다른 형태로 계단을 만든다(사진 6-7). 그래서 주위의 휜 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 중 절 입구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는 서산 개심사를 들 수 있다. 개심사는 일주문 대신 입구에 다듬지 않은 돌 두 개를 세우고 개심사 입구, 세심동이라 적어 놓은 것부터가 일품이다. 절까지 가는 길이 두세 번 휘어져 오르게 되어 있고(사진 5, 6), 길옆으로 늘어선 오래된 휘어진 소나무가 다칠세라 비켜서 길을 냈고(사진 6), 계단도 자연스럽다.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운치가 다르다. 봄에는 내소사 입구 길이나 고창 선운사 입구 길이 좋고, 여름에는 법주사 입구 길이 숲이 울창해서 좋다. 합천 해인사 입구 길은 옆으로 홍류동 계곡을 끼고 있어 비가 온 후의 여름에 좋다. 선암사 들어가는 길도 옆으로 계곡을 끼고 있어 좋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나 내장사가 좋고, 영주의 부석사도 좋다. 길옆으로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 잎과 길가 과수원에 붉게 익은 사과가 어우러져 일품을 이룬다(사진 7). 눈 내린 산사의 정막함도 좋다(사진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