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이홍규 교수의 컬럼

이홍규 교수 퇴임 기념 논제집 인사말

조회수 : 1,649 등록일 : 2020-10-26

인사말


제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발령받은 1976년부터 이제 정년을 맞이하는 2009년까지 33년의 시간을 큰 탈 없이 보내고 이렇게 회고한다는 것이 참으로 감개무량하고 기쁩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 선생님들의 지도와 후원의 덕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특히 저를 길러주신 고 이문호 선생님, 내분비학의 기틀을 잡아주신 민헌기 선생님, 의학연구의 실제를 가르쳐 주신 고창순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은사이신 민헌기 선생님께서 이번 봄 당뇨병학회 석상에서 저의 특강을 경청해 주시고 크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33년의 대학생활에 합격점을 주신 것으로 알고 크게 기뻤습니다. 또 큰형같이 지도해 주신 이정상 선생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 선생님들의 지도가 없었다면 저의 시작은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내과에는 앞서 말씀 드린 선생님들 외에 많은 좋은 선생님들께서 계셨고, 근무를 하는 동안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의학의 기술과 지혜를 배우려고 애썼습니다. 김응진 선생님으로부터 당뇨병 진료의 실제와 한국 당뇨병 문제의 실체를 배웠습니다. 모두 다 알다시피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전남 옥구에서 이태희 교수와 함께 당뇨병 역학조사를 시행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한용철 선생님으로부터 날카로운 임상적 판단을 배우려 애썼습니다. 김정룡 선생님으로부터 간염 바이러스 연구를 통하여 백신을 만들어 질병을 예방하는 커다란 의학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움의 장을 주신 내과학교실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대학의 다른 여러 선배, 동료, 후배 교수님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면으로도 모두 열거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령 약리학교실의 정명희 교수로부터 프리 라디칼에 의한 손상이 미토콘드리아에 가장 많이 온다는 것을 배웠고, 동기인 김명석 교수로부터 역시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생리, 실험법 등을 배웠습니다. 대학과 병원이 제게 주신 장단기 연수를 통하여 미국에서 당뇨병과 내분비학의 연구 현장과 임상의 실제를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 드린 이러한 학내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과 함께 제가 전공한 한국인 당뇨병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연수에서는 처음 보스턴 대학 내분비내과에서 제임스 멜비 교수와 low renin hypertension에서 mineralocorticoid like activity를 갖는 신물질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물질은 없었고, 1년의 시간은 radioreceptor assay를 배우는데 들어갔습니다. 둘째 해에는 조슬린 연구소로 옮겨가서 토마스 아오키 교수와 함께 당뇨병 환자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대사 이상을 연구하였습니다. 뒤돌아보면 이 때는 새로이 소장으로 영입된 로날드 칸 박사가 미국 NIH에서 옮겨오는 시기였고, 그는 고베대학으로 간 카스가 교수와 함께 인슐린 수용체의 인산화를 처음 발견하면서 인슐린 신호전달과정을 막 밝히기 시작한 분으로 분자생물학을 당뇨병학에 도입하는 첫 세대였습니다. 저는 구세대 내분비학, 당뇨병학을 마지막에 배우고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후에 미토콘드리아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좋은 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내분비학은 원래 홀몬의 측정을 기본으로 합니다. 홀몬을 정확히 측정하는가가 분과의 생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내분비내과에서 직접 홀몬을 측정하는 경우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 내분비내과에서는 홀몬을 직접 측정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연수를 가기 전부터, 그리고 돌아와서도 저는 홀몬의 측정이 아니라도 연구실을 가지는 것이 교수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핵심이라 생각하고 실험실 정립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용할, 민헌기 선생님께서 소아과의 고광욱 선생님과 함께 운용하시던 연구실에는 낡은 기계들만 몇 기 있고 연구비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저의 행적은 생각과는 다른 궤도로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중요한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첫째는 1983년 IDF/WHO의 역학연구 훈련과정에 참가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당뇨병 연구의 방법론을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었고, 많은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큰 시설이 없이도 연구할 방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박용수 선생이 후에 이 과정에 다녀 온 후 연천 연구를 제안하였는데, 연천 연구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여기서 피츠버그 대학의 로날드 라포르테 교수를 알게 되었고, 세계 당뇨병 연구의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또 고베대학의 다니구치 선생과 친구가 되었고, 선생은 와까야마 대학의 기시오 난조 총장님을 소개시켜 주셔서 후에 아시아 여러 당뇨병 학자들과 함께 아시아의 당뇨병학 연구의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난조 선생님은 한일 당뇨병학회를 연결하는 굳건한 다리 역할도 해 줬습니다.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저의 정년기념 심포지엄에도 참석해 주셨는데 대단히 감사합니다.

연천 연구에는 많은 제자들이 동원되었고,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백희영 교수 제자들과 함께 겨울 2달 큰 고생들을 했습니다. 2차 조사에는 신찬수 선생이 고생하였고, 이때 귀중한 DNA 시료가 얻어지고 냉동고에 보관됩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론은 이 시료를 바탕으로 싹이 텄습니다. 그 초기 연구에 기여한 송지현 박사께 감사 드립니다.

피츠버그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조남한 선생님이 귀국하여 역학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국립보건원 조병륜 원장님은 저를 특수질환부장으로 불러주셔서 당뇨병 연구를 더 진전시킬 기회를 주셨고, 유전체 연구소를 창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셔서 질환유전체 연구의 기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남한 선생이 없었다면 안성, 안산 유전체역학연구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서 김영미 박사를 만나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상이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킨다는 첫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되돌아 보면 우연과 행운으로 당뇨병과 표리관계에 있는 대사증후군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의 쇠퇴에 따른 증후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아직 불완전한 이 이론은 박경수 교수를 위시한 내분비대사내과의 여러 후배, 제자들이 완성시켜 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출간할 책자에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일을 직접 해낸 여러 동료, 후배, 제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최근에 조영민 선생이 mtDNA가 나타내는 대사기능과 체질량지수 사이에 유의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였고, 김재현 선생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임수 선생은 제초제 아트라진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이상을 일으키고 동물에 투여하면 대사증후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대사증후군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대만의 야우-훼이 웨이 박사, 일본의 마사시 다나까 박사를 위시한 여러 아시아 미토콘드리아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시아 미토콘드리아학회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학회는 난조 교수님 주도로 진행된 아시아 분자당뇨병학회와 함께 제가 당뇨병의 미토콘드리아 원인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장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당뇨병 이외의 여러 분야에도 손을 댔는데, 의학이 무엇인지, 의학의 구조가 어떤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레스터 킹의 “Medical Thinking”을 번역하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의학, 동양의학의 구조와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부를 김용일 선생님, 이부영 선생님이 주도하신 의학개론 책 편집에 참여하며 요약하여 넣었고, 한의학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편의 논문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급속히 발전하는 기초생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Dilemma Game”을 최강원 교수와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손을 대다 보니 인류의 진화, 이동과 질병 사이의 관계를 알고 싶었고 인류학에도 손을 대었고, 곧 서울대학교 출판부를 통하여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분자생물학,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급속도로 발전하는 생명과학의 여러 면모를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은 당뇨병을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필수적인 일이었지만 많은 선생님들에겐 좀 엉뚱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생물리학의 중요성에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하간 그간 제가 공부한 내용은 대부분 논문이나 책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책을 쓴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이기도 하고 제가 공부해 가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이 아니면 제가 이런 조그마한 업적이나마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못 가졌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 배움의 여건을 마련해 주신 대학과 병원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또 특기할 한 분은 고등학교 친구 안병근 사장입니다. 제가 의기소침하여 있을 때 여러 고향친구들과 힘을 합쳐서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연구의욕이 꺼지지 않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제 일생을 풍부하게 해 주신 분들을 떠올리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일이 열거하며 감사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사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되돌아보면 집안일을 잘 모르고 경제관념도 모자라, 가끔 외골수로 빠지는 제가 때로는 제법 미웠을 듯 합니다. 3남매를 낳아 키우며 이 긴 시간 내조해 준 수고는 고맙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을 듯 합니다. 아무려나 다시 한번 저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정년퇴임을 맞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9년 8월 이홍규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서는 이메일 주소가 무단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위반 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뷰어 다운로드

뷰어는 파일 문서 보기만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뷰어로는 문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 편집 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용하는 문서는 한글2002,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PDF(아크로뱃리더) 5가지 입니다.

사용하시는 컴퓨터에 해당 뷰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 뷰어를 다운로드 받아 각 개인 컴퓨터에 설치하셔야 합니다.
뷰어는 사용하시는 컴퓨터에 한 번만 설치하시면 됩니다.

전체 검색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