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문호개방 이후 고종과 조선정부는 국가 차원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천에 나섰다. 밖으로는 일본과 청나라에 견문단을 보내 그들의 근대화 상황을 살피고, 안으로는 통리기무아문, 별기군, 박문국 등을 설치해 서양 문물의 도입을 통한 근대화를 추진했다. 

 

고종과 조선 정부는 의료 근대화도 추진했다. 한의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진대, 유일한 방법은 근대 서양의학을 수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제중원은 이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이었다. 

 

제중원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약칭 외아문, 지금의 외교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외아문 독판(장관)이 제중원 당상(堂上, 지금의 병원장)을 겸임했다. 외국어에 능숙하고 서양 정세에 밝은 젊은 관리들은 제중원 주사(主事, 지금의 병원 사무직 직원)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조선에는 서양의학을 연마한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알렌(Horace. N. Allen), 헤론(John W. Heron), 에비슨(Oliver R. Avison) 등 선교사 겸 의사들이 제중원 의사로 근무했다. 

 

개원 당시 제중원의 위치는 갑신정변의 주도자 홍영식의 집(갑신정변 실패로 홍영식이 역적이 되면서, 그의 집은 당시 국법에 따라 나라에 귀속되어 있었음)이었다.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의 일부에 해당한다. 고종과 조선 정부는 해마다 관세 수입의 일부를 제중원 운영비로 배정했다. 

 

제중원은 외래진료실, 수술실 겸 약국, 병동들을 갖춘 소규모 종합병원이었다. 개원 후 만 1년 동안 1만여 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 등 기존 국립병원에서 행하던 빈민구호 사업을 승계하고 콜레라 등 전염병 퇴치에 기여하는 등 공공의료활동도 잊지 않았다. 

 

1886년 3월 29일,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서양의학 교육기관이 문을 열었다. 이른바 제중원의학당이다. 고종과 조선 정부는 교사(校舍)와 교육용 도구 등을 마련하고, 선교사들에게 강의를 맡겼다. 각 도에서 추천한 학생 16명이 입학했고, 그 중 12명이 본과에 진출했다. 학생들은 영어, 물리, 화학, 해부, 등 기초 과목을 공부하고 약 조제법, 의료기구 사용법, 환자 간호법 등을 배웠다. 그러나 나중에 의사로 성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890년경에는 제중원의학당의 의학 교육이 중단되고 말았다. 외국인 교수진의 이탈, 학생들의 의학과 영어에 대한 적응 실패, 학생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 그리고 조선 정부의 재정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던 1894년 9월 조선의 총체적 위기를 맞아 고종과 조선 정부는 미국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에비슨에게 제중원 운영을 위탁했다. 고육지책이었다. 일본에게 제중원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미국북장로회에 운영권을 이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비슨은 제중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미국북장로회 소유의 병원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904년 에비슨 등은 제중원을 떠나 서울 남대문 인근에 세브란스병원을 개원했다. 이듬해 대한제국 정부(1897년 수립)는 미국북장로회에 제중원 보수 비용을 지불하고 제중원 부지와 건물(1886년 11월경 조선 정부는 제중원을 을지로 입구로 이전했음)을 환수했다.